산소케이지 안에 있는 똘이는 너무 말랐고,  고통스러워보였다. 똘이는 나에게 계속 신호를 보냈을텐데 나는 왜 이제까지 보지 못했을까?  이렇게 말랐고 이렇게 힘이 없는 똘이를 왜 보지 못했을까하는 죄책감에 눈물을 멈출수가 없았다.  똘이의 신장과 심장은 너무 망가져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똘이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과,  병의 진행을 조금, 아주 조금 늦춰주는 정도이다.  똘이는 일주일 이상 입원해있었다.  수액을 맞고 케어을 받으면서 기력을 조금이나마 회복했다. 기력을 회복한 후 병원케이지에서 7시반만 되면 서서 나를 기다렸다고 간호사가 전해줬다.  회사를 끝내자마자 똘이를 보러간 시간이 그 시간이었다.  아마도 많은 시간동안, 아니 평생 그렇게 나를 기다렸을 것이고,  예전의 나는 그런 똘이의 마음도 모른채 나는 내 볼일을 다보고 시간이 나면 똘이를 보러갔었다.

 

병원에서도 특별히 해줄것이 없었기 때문에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2-3일에 한번씩 병원에 가야하지만 계속 병원에 둘수는 없었다.  집에서도 계속 관심을 갖고 케이를 해야하기 때문에 부모님 댁보다는 우리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다행히 바로 설날이라서 4일내내 똘이와 같이 있을 수 있고,  그 이후에도 동생과 가능한 일찍 퇴근하고 똘이간호에 생활패턴을 맞추기로 했다.

 

똘이는 낯선집이지만 엄마와 있다는 것이 편안한 듯했다.

주로 거실에서 같이 있었다.  거실 한 가운데 방석에 올려주고 담요를 덮어주고 앞에 전기 난로를 틀어주면,   잠시 있다가 방석을 내려와서 중심을 잘 잡지 못해 흔들흔들거리면서도 나에게 오는 똘이를 보니 또다시 미안함이 밀려왔다.  몇일 같이 있으니 안심이 되는지 방석위에서도 곤히 잠들었다.  몸이 허약하니 추위를 계속 타는 똘이를 위해 집을 따뜻하게 해주고,  안심이 안되서 전기난로를 구입했다.  또 출근시에는 난로가 위험할까봐서 방석밑에 유단포를 깔아주니 따뜻하고 좋았다.

똘이는 배변은 절대 실수를 안하는 깔끔이였다.  똘이는 부모님댁에 있을때는 화장실에 깔아준 배변패드를 이용했었다.  욕실까지 가기가 힘들것 같아서 거실 여기저기 배변패드를 깔아주었더니, 비틀비틀거리면서도 잘 찾아간다. 말라서 하늘하늘한 똘이는 나비 같기도 하고 요정같기도 했다.

 

 

 

병원에서 준 단백질이 적은 습식사료를 처음에는 잘 먹더니, 잘 안먹으려고 한다.  안그래도 작고 말랐었는데 더 마른 똘이를 보니 뭐라도 먹여야겠다 싶어서 이것저것 먹여봤지만 영 식욕이 돌아오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보고 염분을 제거한 북어국을 끓여 먹이니 조금 먹이기도 했다.  처음 몸무게를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은 살이 올라서 기운도 어느정도 차리게 되었다.  3월에도 날씨가 계속 쌀쌀했다.  3월의 어느날 똘이는 동생과 산책을 나갔다.  아파트 마당을 산책하면서 오랫만에 마킹도 하고 냄새도 킁킁 맡고, 그 좋아하는 햇빛도 만끽했다.  이것이 똘이의 마지막 산책이되었지만, 똘이는 그때 많이 즐거워했다.

 

한동안 좋아지는가 싶었는데, 똘이는 구토를 반복하고 괴로워해서 병원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수액을 맞고 기력을 조금 찾았다가도 금방 기력을 잃어갔다. 너무 말라서 수액을 놓을 자리를 찾기가 힘들정도가 되었다.  1.2kg까지 몸무게가 내려간 똘이의 몸과 귀는 종이장 같았다.

의사선생님은 서서히 똘이를 보낼준비를 해야 할것 같다고 했다. 이제 먹고 싶은것, 먹을수 있는건 다 먹이고 가족과 같이 마지막을 준비하는것이 좋겠다고 했다.

 

집에 온 똘이는 일어설 기운도 없었다.  음식을 먹지 못해 주사로 미음을 흘려넣어 주어도 별로 먹지 못했다.  북어국에서 부터 아기이유식도 먹여봣지만 전혀 먹질 못했다.  배변이 하고 싶어서 나오려고 낑낑대다가 그냥 방석에 쉬를 하고 당황하는 똘이의 모습이 기억난다. 우리 깔끔이 똘이가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말이다.

혹시라도 똘이가 혼자 외롭게 가는 일이 없도록,  가족들과 일정을 짜서 똘이를 돌봤다.  직장다니는 나와 동생은 연차를 내기도 하고,  바쁠때는 출근할때 부모님댁에 데려다 놓기도 하고,  주부인 언니가 시간을 내서 우리집에 와주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한주를 보내고 주말이 왔다.

거의 두달동안 회사를 제외한 다른 활동이나 모임은 참가하지 않았다.  친한 지인들에게는 나의 이런 사정을 미리 알려두었다.  모르는 한 친구가 전화가 와서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다고 얘기했고,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다고 얘기를 했는데  그 얘기도 지금 후회가 된다.  우리 눈치빠른 똘이가 혹시 듣고선 이제 떠나야겠다 마음 먹은건 아닐까?하고 말이다 .

토요일 아침,  집에 먹을것도 하나도 없고 혹시 똘이 먹일만한 음식이 있을까해서 집앞에 대형 마트를 갔다.  이것저것 사서 나오다가 던킨도너츠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던킨도너츠를 잘 먹지 않는데도 그냥 한번 들어가봤다. 바바리안크림이 들어간 도너츠! 혹시 똘이가 크림을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2개를 샀다. 주사기로 이것저것 줘도 먹질 않아서 바바리안크림 도너츠를 잘라서 손가락으로 크림을 떠서 똘이의 입에 대주었다.  잠깐 머뭇거리면서 킁킁 냄새를 맡더니 먹기 시작했다.  아주 맛있게 한개의 크림을 다먹었다.  더 줄까하다가 혹시 탈 날까봐 좀 보고 주려고 더 주지 않았는데,  이것도 후회된다. 이 바바리안크림이 똘이의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은 몰랐다. 보내고 생각해보니 거의 모든 것이 후회스럽다.

 

똘이는 거의 하루 종일 잠을 잤다.   깨어있을때는 고개를 돌려가면서 엄마를 찾곤 했다.   안심하고 다시 잠을 자거나, 엄마를 바라본다.  똘이의 마른 몸이 너무 약해서 안아주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잠을 잘 때는 방석채로 침대 옆으로 옴겨서 내옆에서  자게 했는데,  그날은 거실 카페트위, 똘이방석 옆에서 그냥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이 깨서  똘이를 불러봤다. 아무런 미동이 없어서 똘이를 만져보니 몸이 뻣뻣해져 굳어가고 있었다.  아직 따뜻한 체온은 남아있지만 똘이는 그렇게 엄마 옆에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우리 똘이가 가는 모습을 보지못했지만,

그래도 엄마가 옆에 있을때 떠나서 조금은 덜 외로웠을까?

사는 동안 똘이는 행복했을까?

 

똘이가 떠난지 3일후 2014년 4울16일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온나라가 슬픔에 잠겨버린 그때, 나도 한달내내 울었던것 같다.  TV에서 종일 사고현장과 소식을 전해주고, 세월호 가족들의 절규를 보면서 너무 황망해서 울고,  또 똘이를 생각하면서 울고,  감정이 뒤죽박죽이었던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울컥한다.

아직도 세월호는 끝나지 않은 슬픔이고, 진행중인 아픔이다. 빨리 가족품에 돌아오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똘이는 '반려견무식자' 엄마를 만나는 바람에 누려야할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가 우리 똘이 많이 사랑한 마음은 알았을것같다. 많이 미안해하는 마음도 말이다.  똘이 덕분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반려견무식자'에서 벗어나서 나름 동물보호를 위해 후원도하고, 서명도하고, 또 신고도 하고, 아주 간혹이지만 봉사도 하고 있다.  또 똘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호두를 키우고 있다.

 

 

똘이가 떠난지 3년이 지났지만 조카는 모든 강아지를  똘이로 부른다.

나의 스마트폰 바탕화면은 아직 똘이의 사진이다.

1년만 그렇게 보려고 했는데 아직 바꾸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똘이는 참 착했다면서 가끔씩 똘이를 추억한다.

집안 곳곳에 있는 똘이사진을 보면서 '똘이 잘 있니?'라는 인사를 할 정도로 일상이되었다.

우리 똘이 보고 싶다.

참 예쁘고 착한 녀석이었는데.....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키우던 반려동물이 마중나온다는 말이 있다.

똘이가 마중나와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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